사회,문화 | [CAMPUS 108]부처님은 욕망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feat. 자체휴강과 마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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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왕지영 작성일20-01-28 19:15 조회10,672회 댓글0건본문
[캠퍼스에서 읽는 불교 이야기] 부처님은 욕망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
자체휴강과 마구니
<부끄럽지만 필자의 실제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공개한다.>
Free 찾다 F 맞은 1학년 1학기
대학에 합격했을 때, 기자는 성인이 된다는 게 너무 기뻤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이제부터 자기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자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첫 수강신청에서 겁 없이 21학점을 신청했다. ‘고등학교 때 주 5일 45학점도 들었는데 겨우 21학점이야’라는 가벼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체력은 21학점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늦잠을 자느라 1교시 수업에 결석하는 일이 많았다. 대학 생활을 만끽하느라 수업을 가벼이 여기고 ‘자체휴강’을 밥 먹듯이 했다. 자체휴강을 할 때마다 “그래도 수업에 갈까?” 고민했지만 그때마다 유혹에 이끌려 계속 수업을 빠졌다.
그 결과는 파멸이었다.
1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표에는 C가 두 개, F가 하나였다.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해서였다. 나는 이윽고 절규했다.
“내가 CF 스타라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원해서 수업을 빠진 것이지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학사경고를 안 맞은 게 어디냐?”라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후회가 밀려왔다. 왜 나는 유혹에 굴복했을까?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왜 후회하는 걸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부처님도 깨닫기 전에는 온갖 유혹에 시달렸을 텐데,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유혹을 이겨내셨을까?”
<마라의 세 딸들이 부처님을 유혹하는 모습>
부처님 깨달음 방해한 ‘마라’
마라의 세 딸이 춘 춤도, 군대가 쏜 화살도
부처님의 깨달음 막을 순 없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우리 같은 중생처럼 유혹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불교에서는 수행을 방해하는 유혹과 욕망을 ‘악마’에 빗대 표현하는데, 이를 ‘마구니’라고 부른다.
욕망을 관장하는 세계인 욕계(欲界)의 최상층인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에는 욕계의 왕이자 마구니들의 대장인 ‘마라 파순’이 사는데, 마라는 다른 사람들의 즐거움과 쾌락을 빨아먹는 낙으로 살지만, 수행자들이 욕망을 이기고 수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에 수행자들의 수도를 방해한다고 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명상하고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바로 직전이 되자 마라의 궁전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처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천 명이 넘는 마라의 아들들과 그의 권속들이 의견을 모았으나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아 마라의 세 딸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마라의 세 딸은 이름이 땅하(Tanha, 갈애), 아라띠(Arati, 혐오), 라가(Raga, 탐욕)였는데, 그들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하고 있던 부처님 앞에 나타나 갖은 아양을 떨면서 유혹했다. 부처님은 유혹에 굴하지 않고 “육체의 쾌락에는 고뇌가 따른다. 나는 정신적인 자유를 얻고자 한다.”며 마라의 딸들을 타이르자 젊고 고운 외모를 지녔던 그들이 일순간에 노파의 모습으로 변했다.
<마라의 군대들이 부처님을 공격하려고 오는 모습>
마라는 딸들이 노인이 돼서 돌아오자 분노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부처님을 공격했으나 마라의 병사들이 부처님을 향해 쏜 화살이 모두 꽃으로 변해 하늘이 꽃으로 뒤덮였다. 마라는 부처님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의 권력을 줄 테니 수행을 멈추라고 회유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나에게 있어 권력과 쾌락은 의미가 없다. 나는 공덕을 쌓았기에 부처가 될 것이다,”며 끝끝내 마라의 제안을 거절했다.
<석굴암 본존불의 항마촉지인은 부처님께서 마라를 향해 자신의 깨달음을 증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자 마라는 “그렇다면 당신이 깨달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부처님이 오른손을 들어 땅을 가리키면서 “이 땅이 증명할 것이다.”고 답했다. 그 순간,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대지의 신이 땅을 뚫고 뛰쳐나와 “가장 큰 대장부이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겠나이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쳤다. 마라는 엄청난 소리와 진동에 놀라 도망가고 말았다. 이때가 음력 12월 8일, 부처님께서 35살이었을 때였다.
마라 실제로 있는 악마 아니라
번뇌ㆍ내면의 욕망 형상화한 것
마라 이길 방법 바른 생각ㆍ말ㆍ행동
부처님께서는 마라를 향해 “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요, 둘째는 혐오며, 셋째는 굶주림이요, 넷째는 애착이며, 다섯째는 나태요, 여섯째는 공포며, 일곱째는 의혹이요, 여덟째는 위선과 고집입니다.”라고 말했다. 마라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망과 집착을 악마에 빗대어 표현한 것뿐이다.
불교에서는 번뇌의 원인이 만족하지 못하고 탐내는 마음, 나와 남을 향해 분노하는 마음,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이를 한자로 ‘탐진치(貪瞋痴)’ 혹은 세 가지 독이라는 뜻의 ‘삼독(三毒)’이라고 한다. 마라의 유혹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번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마구니의 유혹을 극복하고,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올바른 관점’으로 ‘바른 생각’과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을 꾸준히 ‘올바른 방법으로 정진’해나가야 하며, 항상 ‘바른 자세’로 ‘올바르게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를 여덟 개의 올바른 길이라고 하여 ‘팔정도(八正道)’라 부른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 향해 ‘정진’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는 ‘노오력’ 아닌
우리도 부처님같이 되기 위한 것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부처님께서 유혹을 무찌르고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끝없이 ‘정진’했듯이 우리도 자신을 나태하게 만드는 각종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정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는 꼰대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다. 꼰대들이 말하는 노오력은 노력해도 안 되는 사회 시스템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위한 ‘변명’이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정진’은 자신이 정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써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지치지 말고 계속해서 마음을 다잡고 꾸준히 나아가자고 우리에게 보내는 ‘응원’과 ‘조언’이다.
내가 지치고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우리를 유혹하는 마라가 있다. 마라가 계속해서 나를 자체휴강하게 만들 때 우리도 부처님같이 이렇게 외쳐보자.
“나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요, 둘째는 혐오며, 셋째는 굶주림이요, 넷째는 애착이며, 다섯째는 나태요, 여섯째는 공포며, 일곱째는 의혹이요, 여덟째는 위선과 고집입니다. 마라여, 용기없는 자라면 사방을 포위한 코끼리 부대와 같은 그대에게 맞서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을 굳건히 하고 그대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불담기자단 이준호 기자
참고자료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부처님의 생애 편찬위원회, 『부처님의 생애』(2010), 조계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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