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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 [영화 사바하 리뷰]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본성이 아닌 우리의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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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왕지영 작성일20-03-31 12:31 조회7,5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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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리뷰] 우리를 규정하는 것은 본성이 아닌 우리의 행위  

<사바하>와 젊은이 바셋타 – 불교에서 보는 본성의 문제 

 

<숫타니파타>에는 ‘젊은이 바셋타의 이야기’라는 구절이 있다.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던 시절, 인도에는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는 두 젊은이가 살았다. 이들은 ‘바라문’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바라드바자는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라문이라 주장한다.

바셋타는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바라문이라 주장했다.

이 둘의 논쟁은 끝이 나지 않았기에, 두 젊은이는 깨달은 자인 석가모니에게 가 답을 구하기로 한다. 이에 석가모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 고행과 청정한 수행과 감각의 절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이에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는 감복해 석가모니에게 귀의하고 수행자가 된다.

<숫타니파타>의 짧은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간결하다.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우리의 태생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다. 이를 <사바하>에 적용해보면 이렇다. ‘뱀’은 악의 상징도 선의 상징도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마귀로 태어난 것도 미륵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마귀가 될 수도 미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극중 정나한과 김제석이 탄 차량이 전복되는 장면 <출처=사바하> 

이는 작중에서 생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숭배되는 김제석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한 때 인간을 초월한 경지에 이르고 독립운동을 돕고 수많은 빈민을 구제하던 김제석이었으나, 그 또한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고 생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수많은 여자아이들을 살해하는 악을 저지른다. 영화에서 그가 맞는 최후는 한때나마 미륵에 경지에 이른 자조차 언제든지 번뇌에 휩싸여 타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이와 가장 대비되는 것이 정나한의 죽음이다. 그는 김제석의 수제자로서, 그리고 미륵의 사천왕으로서 여자아이들을 직접 살해하는 악을 저질렀다. 그러나 정나한은 ‘그것’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김제석을 살해한 후 박웅재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교적 조용한 죽음을 맞는다. 마치 살인마 앙굴리말라의 일화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뱀으로 태어났냐 코끼리로 태어났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태생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상에 날 적부터 정해진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이다. <사바하>의 결말에서 박웅재 목사는 눈 내리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신을 찾지만, 누구도 그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 비록 이 세상에 눈 내리는 밤처럼 어둡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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