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물 | 1980년 5월 18일, 도청에서 죽음을 택한 지광 김동수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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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동현 작성일18-05-14 22:04 조회3,647회 댓글0건본문
1980년 5월 18일, 도청에서 죽음을 택한 지광 김동수 열사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받쳤던 그의 죽음
우리가 5월이 되면 기억해야 할 대불련 선배가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지광 김동수 열사이다. 그가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38년이 지났다. 이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는 224명이였고 부상자는 3,028명으로 광주와 전라도 지역에 살벌한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광주는 계속 되고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기에 진상을 밝히기 위해 우리는 모두 이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김동수 열사의 사진.(제공=지광 김동수열사 기념사업회)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지광 김동수 열사는 1958년 7월 2일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4남 2녀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78학번으로 조선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1979년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전남지부장으로 취임하여 불교운동에 헌신했다. 그 이후 그는 민주투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힘썼다.
“끝까지 도청을 지켜야 한다”
전남도청을 지키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의 말이다. 그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항쟁본부 시민수습대책위원으로 시신을 보관 안치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5월 27일 새벽 총성과 함께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민주주의를 이끌기 위해 한 치의 두려움 없이 달려왔던 그는 죽음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지광 김동수 열사 추모비(제공=우리불교신문)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김동수 열사는 현재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조선대학교는 그에게 1989년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1992년 지광 김동수열사 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고, 모교인 조선대학교와 장성 서삼초등학교 교정에 그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를 건립했다. 지광 김동수열사기념사업회 총장은 기념사에서 김 열사가 평소 자주 사용했던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라는 추모비의 글귀를 인용하여,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이 사업을 추진하였다고 밝혔다. 기념비뿐만 아니라 매년 김동수 열사를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추모제를 조선대학교와 지광 김동수열사기념사업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동문회원이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불담기자단 이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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