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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 [기획특집]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가다 (1)_ 짙게 퍼진 선암사의 수국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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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왕지영 작성일19-10-01 16:21 조회3,9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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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가다 (1)

_ 짙게 퍼진 선암사의 수국 향기


기획의도

 평소 역사소설과 조정래 작가를 좋아하던 필자는 ‘캠퍼스108’ 취재를 위해 순천에 가게 됐다. 순천을 간다하니 순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인 벌교가 있다는 걸 생각했고, 순천대 취재 후 벌교에 가기로 했다.

 

 1943년, 선암사에서 조정래 작가는 조종현 스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종현 스님은 해방 이후 선암사 부주지로 선임되면서 선암사 소유의 전답을 소작농에게 분배하자고 주장하다 빨갱이로 몰려 경찰서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환속하여 교사가 된다.

 

 조정래 작가는 선암사와 순천, 벌교 일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여순 사건과 한국전쟁, 그리고 자신의 유년기, 아버지의 생애를 투영해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집필했고, 그 역시 이 소설의 내용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처럼 한때 “빨갱이”로 몰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선 조정래 작가가 태어난 곳이자 조정래 작가의 아버지가 머물던 절인 순천 선암사에 가기로 했다.

 

 선암사를 취재하기 위해 우리는 선암사 매표소까지 라원준 순천대 전 지회장의 차를 타고 가 매표소에서부터 승선교까지 비 오는 산길을 걸어서 올라갔다.


 

 승선교(昇仙橋)! 신선이 오르는 다리라는 뜻의 승선교는 조선 숙종 39년(1713)에 지어진 다리로 호암화상이라는 스님이 6년동안 지은 다리라고 한다.

 

 승선교를 지나면 강선루(降仙樓)라는 이층 누각이 계곡과 바위를 감싸며 우리를 맞이한다. 강선루 주변 바위에는 선비들이 놀러온 기념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새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롯데월드 놀이기구 대기줄에 적힌 낙서와 같은 느낌이 아닐까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강선루도 지나고, 조금 더 걸어가니 선암사 일주문이 나오고 범종루와 만세루가 우리를 반겼다. 빗길에 조심조심히 계단을 올라가 대웅전을 향하니 저녁예불 시간이라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예불을 드리는 소리가 장중하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안개를 감싸며 내 귀에 울렸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극한 마음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큰 스승이시며 모든 중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시고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나는 마치 이슬람의 모스크에 온 듯이, 고대 그리스 신전에 온 것과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장엄하고 엄숙한 기도소리에 나 역시 사찰의 예법에 따라 손을 깍지끼고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걷는 차수안행(叉手雁行)을 하며 공손히 절 경내를 걸어다녔다.



 


 

 “사철 맑은 물이 촬촬 흘러내리던 개울, 물에 비치는 그림자까지 합치면 보름달 같은 원이 되던 두 개의 쌍둥이 다리 승선교(昇仙橋), 햇살이 스밀 수가 없도록 울창하던 길고 긴 숲길,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짙게 퍼지던 대웅전 앞뜰의 수국꽃 향기, 항시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던 본존불, 겨울새벽의 냉기 속을 슬픈 울음이듯 끝없이 울려퍼지던 쇠북소리······. 젊은 날의 기억들을 보듬고 있는 선암사의 모든 것들이 시간의 먼지를 털며 되살아나고 있었다.” - 태백산맥 3권 59p.

 

 소설대로 이 절에는 ‘돌틈마다 수국이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예쁘게 피었다. 보랏빛 수국과 파란 수국이었다. 수국의 꽃말은 수국의 색마다 다른데 파란 수국은 ‘냉정’, ‘거만’, ‘무정’이고 보라색 수국은 ‘변덕’과 ‘진심’이라고 한다.

 

 소설 “태백산맥” 속에 등장하는 선암사는 대토지를 보유하고 중들이 거들먹거리며 소작농을 거느리는 절로 묘사된다. 그러니 소작농 입장에서는 파란 수국의 꽃말같이 ‘냉정’하고 ‘무정’한 곳이었으리라.

 

 하지만, “태백산맥”에서 조정래 작가의 아버지를 모티브로 한 등장인물인 ‘법일스님’은 이러한 모습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행해야 하는 승려들의 집단인 절집이 몇백 년에 걸쳐서 지주 노릇을 해온 것만도 부끄러운 죄업을 쌓은 것”이라 생각하고 “이제부터라도 사답의 소유권을 소작인에게 넘겨주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따르고 실행하자”고 주장하여 주지와 갈등을 빚고 좌익으로 몰려 잡혀가고 만다.

 

 법일스님은 소설에서 “열여섯에 출가해서 8년 만에 법사가 되었고 일본 유학까지 다녀와 만해선사의 총애를 받은” 뛰어난 스님으로 묘사된다. 법일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랏빛 수국처럼 ‘진심’으로 실천하기 위해 농지의 분배를 주장했지만, 파란 수국같은 스님들에게 빨갱이로 몰려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저 한국적이고 예쁜 절인줄로만 알았던 선암사에는 이처럼 조정래 작가와 조종현 스님의 피가 빗물처럼 흘러내렸던 것이다. 그 피는 잉크가 되어 만년필을 적셔 원고지에 섬진강 물같이 흘러가 “태백산맥”이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소설이 된 것이다.

 

 

KBUF 불담기자단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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