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 [현장취재]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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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왕지영 작성일19-10-29 13:38 조회4,653회 댓글0건본문
[현장취재] 소설 ‘태백산맥’의 현장을 가다 (2)
_ 길 따라 벌교 20리길 (1)
7월 21일, 순천-벌교 기행 둘째 날이었다. 비는 다행히 그쳐서 날씨가 좋았다. 오전 7시 40분 차 시간이 되자 숙소를 나와 88번 버스를 타고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으로 가기로 했다.
88번 버스는 순천 시내를 벗어나 벌교를 향해 시골길을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우리는 차창을 내다봤다. 푸른 산빛으로 가득 찬 논과 밭, 산골짜기들이 있었다. 연신 사진을 찍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그렇다. 벌교는 바닷가를 낀 읍이었다.
벌교(筏橋)는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보성군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는 순천 생활권에 가깝다. 원래 조선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벌교는 낙안군(樂安郡)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지만 1908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낙안군이 두 개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낙안읍성 일대는 순천에 귀속시키고, 벌교 지역은 보성에 귀속시켰다.
버스로 약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제석아파트’ 정류장에 내려 한 10분 정도 걸어가니 ‘태백산맥문학관’이 나왔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에 걸린 글귀 -
태백산맥문학관 건물 벽에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조정래 작가의 육필이 쓰여 있었다.
문학관 내부에는 조정래 작가가 소설 집필을 위해 직접 모은 자료들과 필기구, 취재 준비물과 복장 등 다양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그중에 제일 놀라웠던 건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 15,000여 장과 함께 아들, 며느리, 손자, 독자들의 필사 원고였다.
조정래 작가는 일찍이 가족들에게 “너희들은 몇 대에 걸쳐 이 책의 인세로 돈을 벌 것이니 이 소설을 필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필사를 요구했고, 가족들은 이에 묵묵히 임했다고 한다. 역시 ‘조정래답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전시관 한편에는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위반 시비에 걸렸던 내용과 조정래 작가가 협박에 시달렸던 내용, 그리고 테러를 두려워해 남긴 유서 두 장을 보았다.
분명히 이 소설은 이념을 극복하기 위해 쓴 책인데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문학가를 좌파, 빨갱이, 김일성 앞잡이로 몰아서 공격하고 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태백산맥문학관에 전시된 물품들. 그 중에서도 가족들이 필사한 원고지가 가장 눈에 띈다.>
그리고 전망대에 올라 벌교의 전경을 보았다. 문학관 바로 옆에 소설 속 등장인물이 사는 소화네 집이 바로 지척이었다. 우리는 곧장 내려와 소화네 집으로 향했다.
“조그만 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
“태백산맥”에 묘사된 소화네 집 모습이다. 실제 소설 내용 그대로 집이 재구성되어있었고, 직접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다. 천대받는 무당의 집인데다 집 또한 외진 곳에 있다보니 은신하기 매우 좋은 구조였다. 괜히 태백산맥의 첫 장면이 여기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네 집 바로 옆에는 바로 현부자네 집이 있었다. 태백산맥에서 이 집이 자리잡은 곳은 “천하에 더 이를 데 없는 명당이라”고 묘사되며, “풍수를 모르는 눈으로 보더라도 그 땅이 희한하게 생겼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이 현부자네 집은 일제 당시 거부로 엄청난 돈을 모았으나 어느 순간 갑자기 패가망신해 이 집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대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바로 일본식 정원이 나와 이 집이 만들어진 시대상을 예감케 했다. 그리고 건물 대청마루에 올라갔더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로, 주종관계가 건물 구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소화네 집과 현 부자네 집에서 사진을 찍고 후딱 소화다리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아무말 없이 벌교천가를 따라 걸어가는 모습은 옷만 장삼가사로 바꾸고 머리만 밀면 영락없는 “태백산맥” 속 탁발승 그 자체였다.
KBUF 불담기자단 이준호 기자
도움주신분: 금강신문 조용주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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