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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 노란 복수초 꽃의 전설이 담긴 “잘 늙은 절”, 완주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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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불련 작성일21-02-15 16:20 조회2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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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산사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자연 속 한가운데 파묻혀 고요하고 적적한 풍경을 연상한다. 그런 것만으로도 좋은데, 더욱이 오래된 절간이라면 그 향취가 얼마나 그윽할까. 그런 절이 있다. 나만 알고 싶고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남몰래 혼자 가서 그저 있는 것으로 위로받고 가는 절간이 있다. 바로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에 있는 화암사(花岩寺)가 그런 절이다.

 

 화암사를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자동차가 없이는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버스를 타고 가려면 전주에서 완주군 고산면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고산터미널에서 하루에 10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화암사행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작년 8월이었다. 마음이 울적해서 화암사에 가고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짐을 꾸리고 화암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중간에 깜빡하고 버스 종점이 아닌 곳에서 내린 바람에 버스 종점까지 30분을 걸어가야 했으며, 종점에서 화암사 입구까지 가기 위해 약 한 시간 정도 시루봉을 등반했다. 그날은 어제 비가 몹시 와서 길이 매우 험하고 미끄러웠다. 하지만 비가 온 탓인지 계곡물이 불어나서 바람과 함께 시원스럽게 흘러갔다.

 

 시루봉을 오르는 내내 산길에 안도현 시인이 쓴 화암사에 대한 시와 수필, 그리고 화암사에 얽힌 옛이야기가 적힌 푯말이 계단 곳곳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화암사에는 노란 복수초에 얽힌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이 있다. 그 내력을 풀자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연화공주가 병에 걸려 앓고 있었는데 아무런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왕은 공주를 살리기 위해 부처님께 지성으로 불공을 올렸는데, 어느 겨울날 밤 왕의 꿈에 갑자기 부처님이 나타나 “너의 불심에 감동하여 연화공주의 병을 낫게 해줄 것이니라.”하며 조그마한 연꽃잎 하나를 던져주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왕은 신하들에게 연꽃을 찾으라 명했다. 그러나 겨울에 어찌 연꽃이 피겠는가. 그러나 불명산 깊은 산골짜기 어느 바위틈에 연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대궐에 전해지자 임금은 신하들에게 명령해 불명산에 가 연꽃을 가져오게 했다.

 

 신하들이 불명산에 올라 연꽃이 있다고 한 바위에 갔을 때는 눈이 쌓인 바위틈 사이에 노란 복수초가 피어 있었다. 꽃을 본 신하들이 누가 이런 꽃을 키우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바위 뒤에 몰래 숨어 있었다. 그러자 연못 속에서 용 한 마리가 나타나 꽃에 물을 주고 다시 연못 속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신하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쳤지만, 담력이 강한 어느 한 신하가 꽃을 꺾어 궁궐로 돌아와 임금께 바쳤다. 연화공주가 꽃을 먹고 마침내 병이 낫자 임금은 부처님의 큰 은혜에 감동하여 꽃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짓고 그 이름을 ‘화암사(花岩寺)’라 불렀다 한다. 

 

 화암사가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화암사중창비〉에 따르면 원효대사가 이 절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어 신라 시대 때부터 이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암사에는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極樂殿)과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가 있다. 과거 화암사에는 많은 전각이 있었지만, 임진왜란과 6.25 전쟁 시기 극락전과 우화루, 적묵당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모두 화재로 타 없어졌다.

 

 나는 우화루 옆에 난 작은 문을 열고 절 안에 들어갔다. 화암사에는 여느 절과 달리 문(門)이 없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해탈문과 같은 문이 없다. 그 대신에 2층 누각인 우화루(雨花樓) 처마 밑에 있는 문간을 통해 경내로 들어간다. 화암사는 우화루가 남향을 바라본 채 정면으로는 대웅전 역할을 하는 극락전이 있고, 스님이 사는 승방인 적묵당(寂默堂)이 왼쪽을 향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화암사에 유일하게 단청이 울긋불긋하게 칠해진 불명당(佛明堂)이 있다.

 

 화암사는 작은 성새였다. 우화루와 적묵당, 불명당으로 둘러싸인 절간은 마치 300년 전으로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극락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를 올렸다. 법당은 화재 위험이 있어 초를 함부로 키지 못하고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절 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법당은 고요했다.

 

 극락전은 화암사의 중심 전각으로, 우리나라에서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지어진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다. 하앙식 구조란 중국 남조에서 유래된 건축기법으로 극락전이 하앙식 건물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건축학계에서는 “일본의 건축 양식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었지만, 1981년 화암사 극락전을 해체 보수하던 중 극락전이 하앙식 건물인 것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백제를 통해 중국의 건축 기술이 일본에 전래되었다”는 이론이 우세하게 되었다.

 

 극락전의 현판은 다른 절과 달리 글자가 한 글자씩 쓰여있어 따로따로 ‘극’, ‘락’, ‘전’이라고 달려있다. 이는 하앙식 구조로 인해 처마를 받치는 공포(栱抱)가 지붕 위로 길게 빼 나와 있기에 긴 현판을 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묵당에 우두커니 앉아서 풍광을 바라봤다. 화암사의 전각들은 불명당을 제외하고 단청을 새로 덧칠하지 않아 나무가 그대로 보일 정도로 단청 빛이 바래있었다. 그래서인지 화암사는 오래된 절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은은하고 고풍스러운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화암사는 ‘고요할 선(禪)’ 그 자채였다.

 

불담기자단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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