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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신년특집]1959년생 돼지띠 대불련 동문 2人의 새해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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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불련 작성일19-03-07 15:19 조회9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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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1959년생 돼지띠 대불련 동문 2人의 새해 제언 

 

불교신문│2019년 1월 7일

여태동 기자

 

불기 2563년 기해년(己亥年) 새해가 밝았다. 돼지해인 올해는 새롭게 출범한 조계종 제36대 집행부가 ‘사회와 복지’에 중점을 두고 종무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돼지해를 맞아 우리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1959년생 돼지띠 대학생불교연합회 동문 2명을 만나 자신이 살아왔던 신행활동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미래 불교의 모습을 위한 제언을 들어보았다.

“부처님 가르침을 근간 삼자”

남홍식 경북 영천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불교계에 세속의 이분법적 사고가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원융회통 가르침 회복해
邊見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입학당시 캠퍼스 분위기는 한 마디로 ‘혼란기’였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와 그 후 사회 민주화 분위기가 고개를 들었고, 불교계에는 10.27법란이 발생했어요. 학내는 시위로 몸살을 앓았어요. 재학당시 불심 깊었던 서돈각 전 불교진흥원 이사장님이 총장님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였어요. 저희 불교학생회원들이 법난 상황을 보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다독이곤 했어요. 격한 마음을 내어 분신이라도 할까봐 무척 걱정을 하신 거죠.“

1959년 기해생(己亥生)인 남홍식 경북 영천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에 1978년에 입학했다. 입학 초기부터 경북대 불교학생회(경불회)에 가입해 매일 금강경을 독송하는 등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그는 ‘혼란과 격랑의 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사회분위기는 혼란스러웠지만 불교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지대했다고 했다. “봄에 대로에 부스를 설치해 놓고 신입회원을 1주일정도 가두에서 모집했는데 300여명이 가입했어요. 그래서 신입생 대표를 선출해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선배님들의 지도로 불교에 대해 공부하고 사찰을 찾아 스님들과 심도깊은 공부도 하고 기도와 수행을 하며 신심을 증장시켰어요.”

학생회관에 서클룸(동아리방)이 있었는데 독경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구도열기를 기억하고 있는 남 과장은 “시대는 혼란스러워서인지 자신의 본래모습을 찾기 위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가진 법우들이 많아 매년 출가수행자를 배출할 정도였다”며 “그 출가자 중의 한명이 의성 고운사 주지로 계시는 자현스님이다”고 말했다.

불교학생회 회원들은 신행활동 뿐 아니라 봉사활동에서 열성적이었다고 했다. “어느 해 여름 의성군 전곡면으로 봉사활동을 갔다가 산 너머에 고운사가 있어 찾아갔다가 근일선사를 친견하면서 신심이 발흥되어 그해 겨울 수련회를 3박3일로 가서 1080배도 하고 참선수행을 했어요. 대학생 불자들의 발심에 근일선사도 기뻐하시면서 밤새도록 소참법문을 해 주셨어요. 참선과 불교에 대해 일일이 질의응답까지 해 주신 덕분에 많은 대학생 불자들이 발심해 의성 고운사를 찾아 참선수행을 하는 전통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열혈 구도자’였던 남 과장은 대학 졸업한 해인 1982년 경북 예천의 고등학교에 부임했다. 첫 부임학교에서부터 불교학생회를 결성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학생들에게 접하게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청소년 교육의 지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초발심의 자세로 생활해 오던 남 과장은 경주와 인연을 맺는다. 우연한 인연이 아니라 필연적 인연이자 의도적 인연이다. “천년고도 경주는 불국정토나 다름없는 곳이요. 이곳에서 불교활동을 해야겠다는 발심이 일어나면서 아예 이사를 왔어요. 사찰도 초전법륜지인 흥륜사를 원찰로 두었어요.”

경주에서 교사불자회 활동을 중추적으로 한 남 과장은 경주지역 교사문화답사회와 신라문화원과 연계한 경주문화답사회 활동을 이끌며 불자의 길을 걸어왔다. 경주 화랑교육원에서 교육사로 재직하며 신라 화랑도 정신을 세상에 전하는데도 진력했다. 그는 “저는 어쩌면 전생에 화랑도였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교직생활 37년.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이나 변했고, 네 번째 변해가는 시간이다. 그동안 평교사에서부터 교감, 교장, 장학사, 교육사 등 주요 교직을 다 거쳤고 지금은 경상북도 영천교육지원청에서 교육지원과장으로 미래세대의 교육정책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 변하는 시간을 여여하게 바라보며 살아온 남 과장은 지금도 휴대폰 메인 창에 ‘이 뭣꼬?’라는 화두를 새겨 넣고 생활하고 있다. 3년여 남은 교직생활도 초발심 때처럼 부처님의 교육정신에 입각해 보내고 싶은 의미에서다.

“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세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늘 산속 어느 선방 좌복에 앉아 있으니 말입니다. 안목은 뚜렷한데 실천이 따라주지 않아요. 아침 저녁으로 108배 정진도 하면서 본래의 면목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요즘 불교계를 보면서 할 말도 많아 보였다. “늘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간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는 것 같아요. 불교계에 세속의 이분법적 사고가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교는 중도사상인데 이분법적 프레임에 사로잡히다보니 순수한 불교의 가르침이 훼손되는 듯합니다. 이것도 맞으면 저것도 맞아야 하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지요. 원융회통의 불교의 가르침을 회복해 한쪽에 치우치는 변견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님 품 안에서는 모두가 일불제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남 과장은 “대학시절에 영천 은해사 기기암에서 만난 휴암스님처럼 큰 안목을 가진 선지식이 한국불교의 올바를 길을 안내해 주고, 종단에서는 미래의 동량이 되는 인재불사에 힘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경주 = 여태동 기자

“ ‘수행의 사회화’ 모색할 때”

류정수 한국명상협회 상임이사

불교수행도 우리사회의 명상처럼
수행에만 머물지 말고
힐링과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 다각화해야

“세상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60대에 들어서니 지금껏 살아 온 게 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苦)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고라는 것이 스트레스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럴수록 초발심으로 돌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갖습니다.”

류정수 한국명상협회 상임이사는 지금껏 살아 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첫 화두를 던졌다. 1959년생 돼지띠. 학번으로는 79학번이다. 영남대학교 심리학과에 다녔던 그는 고등학생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던 청년불자였다. 재수해서 입학한 대학교에서는 사회민주화 물결이 대학캠퍼스에서도 들끓고 있었다.

불교학생회 문을 잠시 드나들다 일찍 군대를 다녀 온 그는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못했다. 당시 ‘체육관 선거’라고 비판 받던 대통령 선거에 대한 직선제 개헌논의가 있던 시기에 대구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대구 반월당 사거리라는 대로에 시민과 학생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그는 직선제 개헌시위를 주도하다 집시법 위반 등으로 투옥됐다.

“단순한 집시법 위반 혐의가 아니었어요. 당시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민주화 열기가 대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민주인사들과 저를 함께 엮어서 어떻게 해 보려고 했던 거죠.”

결국 류 이사는 1986년 투옥돼 1년간의 감옥생활을 한 후 1987년 석방됐다. “감옥에서 나온 후 사회의 민주화 대열에 나서기 위해 정진하는 대학생불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대구경북지부 간사장을 맡았어요. 대학시절 영남대불교학생회에 잠깐 얼굴을 비친 인연으로 사회민주화에 불교계의 힘을 보태고 싶었던 거죠.”

류 이사는 보살의 원력을, 불교의 깨달음을 사회민주화라는 큰 흐름으로 연결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직선제 개헌과 통일운동 등 대구경북 지역에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탰다. 불교계에 몸을 던졌던 류 이사는 90년대에는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불교운동을 모색하기도 했다.

“월정사주지 정념스님이 주도했던 한민족불교중흥회에 사무국장을 맡았어요. 당시 월주스님이 총무원장이었는데 불교의 중흥을 위한 다양한 모색을 했었는데 인연이 맞지 않아 조직이 중도에 해체됐어요.”

류 이사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 일은 은사인 영남대 장현갑 명예교수를 만나고서부터다. “늦게 학적을 회복해 심리학과를 졸업했는데 은사이신 장 교수님이 마인드플러스스트레스대처연구소를 설립하시면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합류하게 됐어요. 장 교수님은 세계적인 명상치유 프로그램인 미국 하버드 의대 벤슨 박사의 이완반응법과 메사츄세츠 의대 존 카밧진 박사의 MBSR(Mindfulness-Based-Stress Reduction)을 연구한 뒤 독자적으로 한국형 명상치유 프로그램인 K-MBSR(Korean version-Mindfulness-Based-Stress Reduction)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류 이사는 부소장을 맡았다. 산하에 마음챙김명상치유센터도 맡아 상담과 힐링, 교육진행 등 장 교수의 명상관련 연구소의 일에 힘을 보탰다.

“저희 연구소에서 표방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은 명상에 과학을 입힌 과학적 명상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잡지 타임지는 이를 가리켜 ‘마음챙김 혁명(Mindfulness Revolution)'이라는 표현을 쓰더라구요.”

절집에서 수행을 해 왔던 류 이사는 명상과 참선은 결국 한 길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참선수행도 광범위하게는 명상에 속한다고 봐야죠. 미 서구에서 연구된 과학적 명상을 재구성해 현대인들에게 적용한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저희 연구소가 보급하고 있어요. 멀리 보면 미국에서 참선수행을 전했던 숭산스님 같은 분의 수행법도 위빠사나 수행법도 여기에 녹아 있다고 봐야 합니다.”

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출처 :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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