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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과 불상] 1. 사찰의 성립과 정신적 배경 - 신보라 교화간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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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불련알리미 작성일10-02-19 10:53 조회7,2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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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련 중앙사무국에서는 교리스터디와 독서모임이 매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번 법회자료는 교리스터디에서 토의됐던 '사찰과 불상'에 대한 것 입니다.
신보라 교화간사님의 도움을 받아 제공되는 자료로 교리스터디에 참석했던 법우들과 토론한 기본 텍스트입니다.
그럼... 한 챕터 한 챕터 살펴 볼까요???
궁금한 것은... 댓글 또는 신보라 간사님을 찾아 주세요^^*

1. 사찰의 성립과 정신적 배경

 

사찰의 어원은 범어의 '상가람마(Samgharama)'로,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이 상가람마를 '승가람마(僧家藍摩)'로 표기하였고, 그것을 '가람(伽藍)'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번역하여 중원(衆園)또는 승원(僧園)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교교단을 구성하는 비구(比丘, 남자승려), 비구니(比丘尼, 여자승려), 우바새(優婆塞, 남자신도), 우바이(優婆夷, 여자신도)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모여 불법을 닦고 수행하며, 대중 또는 중생으로 불리는 불신도와 일반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거처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석가모니는 성불한 뒤 제자들에게 사문의 근본 생활양식인 4의지(四依止)를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인도의 환경상 이는 적합하지 않은 면이 있었고, 이에 부처님은 우기인 3개월 동안 탁발과 중생 교화를 위한 유행(遊行)을 중단할 것을 계율로 정하고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안거(安居) 제도를 택하였다.

우기의 안거제도가 차츰 정립되면서 승려들은 부처님을 모시고 한 곳에 모여 정진할 수 있기를 열망하게 되었고, 유력한 신도인 왕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은 음식물의 제공과 함께 불교 교단에 원림(園林)을 기증하여 승려들을 머무르게 하였다.

원림은 원래 휴식처나 과일이 있는 동산을 뜻한다. 인도의 여름더위는 나무 그늘의 시원함이 적합한 수행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원림이 안거를 위한 즐거운 동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교 최초의 원림은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왕이 불교 교단에 기증한 죽림원(竹林園)이다. 처음에는 이 원림 안에 있는 나무 밑이나 석굴에서 승려들이 거주하였으나, 한 부호가 비나 이슬을 피할 수 있도록 허술하나마 오두막 60채를 지어 기증하게 됨에 따라 죽림원에는 불교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竹林精舍)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뒤 정사는 차츰 격식을 갖춘 주거용 건축물로 바뀌어갔고, 그 규모도 커져갔다. 죽림정사 이후 석가모니 당시의 최대 사찰로 전해지고 있는 기원정사(祇園精舍)가 건립된 것도 얼마 뒤의 일로서, 이 기원정사의 건립에는 수닷타 장자의 깊은 믿음이 어린 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른 아침, 죽림정사를 찾은 수닷타장자는 부처님께 예배하며 인사하였다.

"밤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기쁨과 근심을 여의어서 맑고 편안하게 빈 마음이 된 자,

나고 꺼짐이 없는 도를 깨달아 열반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길이 편안한 잠자리를 얻느니라."

부처님의 말을 들은 수닷타는 문득 마음이 맑아지면서 눈이 열리었고, 삼귀의와 오계를 받아 불교 신자가 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청하였다.

"원하옵건대, 사위성에 오셔서 사람들을 제도하여 주소서."

"그곳에 비구들을 수용할 절이 있겠느냐?"

수닷타는 부처님을 위하여 절을 세울 것을 다짐하고 사위성으로 돌아가 절을 지을 장소를 물색하다가, 기타(Jeta)태자가 소유하고 있는 동산을 선택하였다. 장자는 태자에게 그 동산을 팔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팔 뜻이 없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소리로

"만일 그 동산을 사려거든 금으로 그 동산을 덮어보라."

그 말을 들은 장자는 이튿날 금전을 수레에 싣고 가서 그 동산을 덮었다. 이를 본 태자는 놀라 물었다.

"그처럼 금으로 땅을 사서 무얼 하려 하는가?"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한 부처님을 모실 절을 짓고자 하노라."

기태태자는 크게 감격하여 그 동산을 내어 주었고, 수닷타장자는 그 동산에 크고 웅장한 절을 지었다. 이것이 곧 기원정사 또는 기수급고독원(祈樹給孤獨園)이라고 불리어지는 절이다.

 

정사는 불교 교단의 공동 재산이었고 안거 수행을 위한 실제적인 목적에 따라 생겨나게 된 것이다. 사찰은 정진을 위한 수행처로, 승려들의 공동 주거지로 정착되어 갔지만, 다른 한편으로 초기 교단의 생활 지침이 되었던 '4의지'는 차츰 사라져 갔다. 3개월의 안거가 끝난 뒤에도 비구들이 휴행생활로 돌아가지 않은 채 정사에 머무르는가 하면, 분소의를 입는 전통도 차츰 사라지게 되었고, 탁발보다는 정사에 앉아서 신도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받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승려들의 거주 생활은 불교 교단을 후세에까지 존속시킬 수 있었던 최대의 요인이 되었다. 단순한 유행자의 집단에 지나지 않았던 당시의 신흥 종교들 중에서 현대에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오직, 같은 사문의 집단으로 출발하여 불교보다 약간 늦게 조직된 자이나교만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뿐이다. 사찰의 건립은 그 나름대로의 불교의 교단과 교법을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견고한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유래에서 우리는 사찰이 단순한 승려의 생활 터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물까지도 철저히 불살생해야 한다는 정신이 사찰건립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기원정사의 건립에 얽힌 수닷타의 신심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공덕과 구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님과 불교의 진리가 좋아서, 그리고 참된 구도자들을 고향으로 모시고자 득실을 따지지 않고 기원정사를 창건한 그 순수한 열의를 되살려야 할 것이다.

'사(寺)'라는 호칭은 불교 전파 당시의 중국 관청 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 한나라 때에 인도 승들이 처음 중국을 방문하였고 그들을 머물게 한 곳이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접대하던 관청 홍로시(鴻盧寺)였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에서는 승려들이 머무르는 곳을 '00寺'라고 부르게 되었고, 승려들이 머무르는 곳이 다양화 됨에 따라 관청과 구별하기 위하여 '시'를 '사'라고 달리 부르게 된 것이다.

중국에서 불교가 정식으로 공인된 것은 후한의 명제10년인 서기 67년이다. 중인도의 승려인 가섭마와 축법란 등이 불상과 불경을 흰 말에 싣고 낙양에 들어오자, 명제는 이를 크게 환영하고 낙양성의 서옹문 밖에 '백마사(白馬寺)'를 지어 그들을 머무르게 하였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사찰이며, 그때부터 '寺'라는 호칭은 완전히 정착되었다.

그 뒤 중국에서는 사찰을 지칭할 때 사원이라고 많이 부르게 되었는데 院은 주위에 회랑이나 담장을 두른 집을 의미한다. 사와 원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고 대표적인 예를 산동반도의 적산촌에 있었던 법화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당나라 이후에는 사를 원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사는 사찰전체를 가리키는 어휘로서, 원은 사찰 속에 있는 특정한 기능의 별사를 지칭할 때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산 속에 있는 작은 사찰이나 토굴을 암(庵)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어휘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5년(375)에 세운 이불란사와 초문사이다. 신라의 경우는 아도화상이 일선군(경북 선산)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숨어 살았던 모레(毛禮)의 초가집을 들 수 있으나, 공식적인 최초의 절은 이차돈의 순교를 빚어낸 천경림의 흥륜사를 들 수 있다.

'절'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三國遺事 三卷-三興法-阿道基羅편)>에 보면, 고구려 승 묵호자(墨胡子)가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들어와 최초로 털례(毛禮)의 집에서 불법을 전했다고 하는데, 이후 털례가 철례로 되고 다시 절례로 불리다가 절로 되었다는 설이 전한다. 혹은 사찰에 가면 절을 많이 한다고 해서 절이라 부른다고 하지만 이는 승려들이 종교적인 심성을 일깨우기 위해서 의미를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는 사찰을 '데라'라고 한다. 이는 팔리어 '테라'에서 왔다는 설과 아도가 머문 '텔레의 집'에서 연유되어 일본으로 전해겼다고 보는 설이 있다.

이 외에도 정사(精舍), 도량(道場), 가람(伽藍), 총림(叢林)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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