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대화상을 아세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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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불련알리미 작성일09-12-25 15:00 조회12,573회 댓글0건본문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중국 후량(後梁)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契此)이다.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이었다.
또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 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렸다.
기이한 행적을 수없이 남겼으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을 예언하여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포대화상이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는데 아마도 포대를 메고 다녔던 그의 행적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현대에 들어 포대화상에 대한 신앙과 함께 기복적인 이유에 의해 포대화상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이 많이 제작되고 있는데 중국적인 영향이다.
조선시대 작품으로 몇 점의 포대화상도가 전하는데 본래 선종화의 하나로 그려졌던 것이며 현대에 만들어지는 중국적인 포대화상과는 차이가 있다.
- 다음 백과사전 -
중국 후량의 선승(禪僧)으로서 복덕원만(福德圓滿)한 상을 지니고 있어 회화·조각의 좋은 제재가 되었다. 미륵보살의 화신이라 하여 존경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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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흉화복을 말만하면 신기하게 백발백중이니 만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 포대화상의 면모를 살펴보자. 호를 장정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 했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는 모습이었으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그 자루 속에다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구름을 이불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어도 스님이 나막신을 꺼내 신고 나타나면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그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지만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 하셨다면 저회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짓굿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 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웃음으로 다음은 그의 게송이다
미륵상 곁에는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용할 수있고, 늘 웃는 그 입은 세상의 라는 글귀가 있다.
그리고 악림사의 동당에는 그의 온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
포대화상은 1100년쯤 전, 중국 당나라 계차(契此)스님을 일컫는 말이다.
늘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녀서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다.
뚱뚱한 몸집에 배는 풍선처럼 불룩하고 - 항상 웃는 얼굴..
포대에 공양 받은 음식을 주는되로 받아 가난한사람' 다리
밑 거지에게 나누어 주어 잡탕인 이 밥상을 개차반이라 이른다
(개차반 유래)
개차반
개가 먹는 똥이라는 뜻으로, 말과 행동이 몹시 더러운 사람을
욕하는 말. 술만 먹으면 ∼이 된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승려인데 이름은 계차이고 명주 봉화현 사람이었다.
몸집이 뚱뚱하고 이마는 늘 찡그려 깊은 주름이 잡혀 있고 커다란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습을 하고있었다. 말이 일정치 않고 횡설수설 아무말이나 잘 지껄였으며 길을 가다가 피곤하면 아무데서나 잘 눕고 졸리면 어디서라도 잠을 잤다.
언제나 지팡이에 큰 자루를 지니고 다녔는데 필요한 소지품은 모두 그 자루 속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였는데 얻은 물건도 모두 자루 속에 넣고 다니다가 가난하고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나누어 주기도하고, 먹을 것을 주면 받아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자루 속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포대화상이라고 붙였다.
특히 날씨 예측이나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잘 예언하였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고 계속 어디론가 방황하면서 늘 길을 걸어다니며 일생을 보냇다. 그가 남긴 게송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바루대 하나로 천 집의 밥을 얻어먹으며
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외로운 이 몸 만리 길을 떠다니네
靑日觀人少(청일관인소)맑은 날에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問路白雲頭(문로백운두)길을 묻는 사이 머리에는 백발이 내렸네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고 서기 916년 3월 명주 악림사 행랑 밑 반석에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때도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미륵불 중에도 진짜 미륵불
分身百千億(분신백천억) 백천억 가지로 몸을 나누어
時時示時人(시시시시인) 항상 사람들 앞에 나타나도
時人自不識(시인자불식)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네
그때서야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이라 하여 그 모습을 그려서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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